디지털 기반 업무가 일상화되면서 사무직 근로자의 장시간 좌식 생활이 보편적 근무 형태로 자리 잡고 있다. 재택근무 확대와 모니터 중심의 반복 작업이 맞물리며 하루 8시간 이상 의자에 앉아 있는 경우도 흔해졌는데, 최근 국내외 연구는 이러한 장시간 좌식 생활이 혈액순환에 심각한 장애를 유발할 수 있다며 경고음을 내고 있다. 전문가들은 단순한 근육 피로를 넘어 혈관 기능 저하, 하지부종, 심부정맥혈전증(DVT) 위험 증가 등 장기적 건강 문제로 이어질 수 있다고 분석한다.
좌식 생활이 혈액순환을 악화시키는 가장 큰 이유는 하지 근육의 펌프 기능 저하다. 하체 근육은 움직임을 통해 혈액을 심장으로 끌어올리는 역할을 하는데, 장시간 앉아 있으면 이 기능이 현저히 약화된다. 이로 인해 하지 정맥 내 혈류 속도가 감소하고, 혈액이 한곳에 고이는 정체(stasis) 현상이 발생해 부종·저림·통증 등 초기 증상이 나타날 수 있다. 연구자들은 “혈류 속도가 감소하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정맥 내압 증가와 혈관벽 탄력 저하가 나타난다”고 지적한다.
최근 발표된 한 임상 연구에서는 사무직 근로자 300여 명을 대상으로 혈류 속도와 혈관 기능을 분석한 결과, 하루 7시간 이상 앉아 있는 그룹에서 하지 정맥 직경이 확대되고 혈류역학 지표가 악화되는 경향이 확인됐다. 연구진은 “이러한 변화는 단기 피로가 아니라 구조적 기능 저하의 전조일 수 있다”며 장시간 좌식 생활이 만성 정맥부전으로 이어질 위험성을 강조했다. 특히 비만·흡연·고령 등 혈관 취약 요인을 가진 근로자에서는 위험도가 더욱 높게 나타났다.
가장 우려되는 합병증 중 하나는 심부정맥혈전증(DVT)이다. 다리 깊은 정맥에 혈전이 형성되는 이 질환은 장시간 비행이나 부동 상태에서 주로 발생하는 것으로 알려졌으나, 최근에는 사무직 근로자 사이에서도 사례가 증가하는 추세다. 혈전이 폐로 이동하면 생명을 위협하는 폐색전증으로 이어질 수 있어 조기 예방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취재진이 만난 혈관외과 전문의 이서현 교수는 “사무직 근로자의 좌식 생활은 현대인의 생활습관병 중 대표적 위험 요인”이라고 강조했다. 이 교수는 “하루 1시간 운동을 하더라도 나머지 10시간 이상 앉아 있으면 혈관 건강은 여전히 위협을 받는다. 문제는 많은 근로자가 ‘가만히 앉아 있는 것이 위험하다’는 사실을 인지하지 못한다는 점이다”라고 설명했다. 이 교수는 또한 다리 꼬기·낮은 의자·다리 압박 부족 등이 혈류를 더욱 방해하는 요소라고 전했다.
근골격계·운동생리학 전문가 최민아 박사는 좌식 생활의 구조적 문제를 지적하며 “근육의 비사용(disuse)이 혈액순환 장애의 핵심 원인”이라고 말했다. “하지 근육은 보행·자세 변화 등을 통해 지속적으로 작동해야 정상적인 혈액순환이 이루어진다. 그러나 장시간 앉아 있으면 근육이 쓰이지 않고, 혈관을 압박하는 자세가 반복되면서 부종과 순환 장애가 심화된다”고 설명했다. 최 박사는 또한 “책상·의자 높이, 등받이 각도 등 작은 환경 요인도 순환에 큰 차이를 만든다”며 인체공학적 개선 필요성을 강조했다.
산업보건 분야에서는 업무 구조 자체를 재편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이미 글로벌 기업 일부는 ‘30-30 룰’(30분 앉았다면 30초라도 일어나 움직이기), 스탠딩 데스크 도입, 회의 중 이동 장려 등의 전략을 시행하고 있다. 국내에서도 유사한 움직임이 확산되고 있으나 여전히 대다수 사무실에서는 좌식 중심 근무가 표준이다. 전문가들은 “개인의 노력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조직 차원의 문화 변화가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예방 전략 측면에서는 간단한 생활습관 변화가 큰 효과를 낼 수 있다고 알려져 있다. 1~2시간마다 자리에서 일어나 1~2분 걷기, 종아리 들기·발끝 당기기 등 순환 운동, 다리 꼬기를 피하고 바른 자세 유지, 발판 사용 등이 대표적이다. 또한 스트레칭이나 짧은 계단 오르기만으로도 혈류 개선 효과가 있다는 연구가 이어지고 있다. 수분 섭취가 부족하면 혈액 점도가 높아져 혈전 위험이 증가하기 때문에 충분한 물 섭취도 필수적이다.
기업 차원의 지원 역시 요구된다. 인체공학적 의자·책상 지원, 이동을 유도하는 사무 환경 설계, 직원 순환 건강 프로그램 등은 좌식 생활 위험을 줄이는 실질적 대안으로 평가된다. HR·산업안전 분야 전문가들은 “직원 건강은 생산성과 직결되는 요소이기 때문에, 기업이 나서서 건강 보호 환경을 구축해야 한다”고 제언한다.
사무직 근로자의 장시간 좌식 생활은 단순한 생활 습관이 아니라 현대 직업 환경이 만들어낸 구조적 건강 위험으로 인식되고 있다. 혈액순환 장애와 그에 따른 합병증 위험은 이미 과학적 근거가 충분히 축적되고 있으며, 이를 예방하기 위한 조직·사회적 대응이 필요한 시점이라는 데 전문가들의 의견이 모아지고 있다. 좌식 중심 근무 문화가 지속되는 한, 건강 보호를 위한 전략 마련은 앞으로도 중요한 공중보건 과제로 남을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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